전승한자음의 형성과 배경

한국 한자음의 형성 시기 (참고글)

            伊藤智ゆき의 [조선한자음연구]에 대한 반론및 신설
    

16세기 한글자료에 나타나는 朝鮮한자음을 傳承한자음이라 명명하고 [한국한자음], [조선한자음], [전승한자음]을 호용할 것이다.  이 [조선한자음]의 모태음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지만 학자들에 따라 魏晉南北朝로부터 宋代開封음에 이르기 까지 아직 정설이 없다. 하지만 대체로 唐代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적극적으로는 唐代長安音이고 그 시기는 盛唐이후 7세기 이후 11세기 이전에 형성되었으리라는 것에 대체로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. 본고에서는  중세조선의  한자음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음절편향과 聲調까지 망라해서 [조선한자음]의 母胎音에 대한 가장 최근의 연구업적인 伊藤智ゆき의 (2007)<朝鮮漢字音研究>를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.  伊藤智ゆき에 의해 기존의 연구 업적이 잘 정리되어 있기에 기존 견해의 논점과 한계를 적시하고 이로부터 [전승한자음]의 제 특성을 적출하여 이러한 [전승한자음]의 제특성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母胎方言과 形成 시기를 다음과 같은 방법론에 입각해서 추정해 보고자 한다.


漢語語音史에 발생한 통시적인 어음변화를 일별하고 방언과 역외한자음들의 특성 그리고 그 성립시기와 그 母胎方言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동시에 이런 큰 테두리내에서 [조선한자음]의 모태음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.  특히 중어어음사의 중요한 어음 변화 즉 濁音淸化와 輕脣音의 [전승한자음]에의 반영양상이  [전승한자음]의 형성시기를 밝히는데 있어서 관건이 된다는 것을 밝히고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[조선한자음]은 6~7세기경 고구려 평양지역에서 燕北方言을 모태로 형성되었음을 밝힐 것이다.  또한 경덕왕대의 신라지리지 자료에 드러나는 [신라한자음]의 특성을 고찰하여 濁音淸化와 非鼻音化를 특징으로 하는 唐代長安方言을 반영하고 있음을 밝히고  그러기에 신라의 어음체계는 유성/무성의 대립체계였음을 밝힐 것이다. 따라서 6~7세기에 형성된 고구려 한자음은 이미 유기/무기의 대립체계이고 이 한자음체계가 고려로 전승되었다면 고려말은 고구려말의 내림이라는 것 또한 밝힐 것이다.


王儉은 중국어 번역어일까?

상고중국어로王 = qang q는 k와 h 사이에서 나는 소설음이고 서기3세기 이후 ㅇ으로 변함.儉= kram 으로 재구된다王儉 qanngurum으로 재구할 수 있으며 이는 大都 또는 王城으로 해석할 수 있다. -m이 어떤 의미인지는 불명..Qan ng ran에서 n-g가 발음상 ng 이었을 수 있다. 후대에 安市 역시 왕검과 달리 아니면 같은 과정으로 ... » 내용보기

위만의 왕검성 II - 至遼東

다음은 사기 요동군 험독현에 대한 주석으로 많이 논의 되었던 구절인데1. 應劭曰朝鮮王滿都也依水險故曰險瀆.2. 臣瓉曰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此自是險瀆也.3. 師古曰瓚説是也浿音普大反.기존에는 臣瓚의 구절을 두고 此自에서 此를 王險城으로 해석하여  王險城在樂浪郡(현평양)浿水之東=險瀆 으로 해석하였지만신채호를 위시한 역사학계는 이렇게 해석하면 險瀆이 요동... » 내용보기

남월

월남과 고려는 인구유전학적으로 관계가 깊다. 월남에는 O2b, O2b1. 역시 4%이내고 C3* 역시 고려와 관계가 깊으며 동시에 고려에 많은 mt-M7a 역시 상당한 빈도로 발견되었다. 아직까지 월남 자료가 워낙 영성하지만 백제의 담로니 고구려 유민이니 떡밥이 많다.남월은 장강지역에서 쫓겨나 진나라시대에 남해군이 설치되었다.그런데 요동에서 쫓겨난 조선... » 내용보기

왜5왕은 C3*

현재의 추계에 이르면 경상도에서 yhaplo C3*가 16%로 가장 높다. 다른 지역은 12% 전후.신라.임나 지역의 순장 풍습은 부여와 밀접하고 반드시 흉노와 관랸돼는 것인지 중국과 관련돼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. 중국 역시 전국초기까지 순장이 행해졌다. 요 주제도 좋은 떡밥이야..여하튼 부여의 일부집단은 김해지역에 정착하여 Yhapljo C3* 를 김... » 내용보기